일상 속 닥친 일들을 직접 해결한다는 뜻인 DIY(Do it yourself)라는 용어. 미국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다 보니 점점 더 공감이 갑니다. 지난 1년여간은 더더욱 그걸 느끼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올렸던 가구전문점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서 조립하는 일은 애교 수준. 한걸음 나아가 만약 
한국에서 지금까지 살았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들을 해내고 있으니까 말이죠. 지금부터 제가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2011년 7월, 보일러 고장

갑자기 온수가 끊겼습니다. 보일러가 있는 다락문을 열고 온도를 높혀 보아도 보일러에서 점화되는 소리가 나질 않았습니다. 보일러 내부의 가스불이 꺼진 모양입니다. 급한 마음에 점화 스위치를 연신 눌러보았지만 스위치는 꿈쩍조차 않더군요. 월세집인지라 수리를 부탁하기 위해 주인에게 연락, 조치를 취했겠지만, 그는 마침 해외 출장으로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엔 상황이 애매해집니다. 문제가 가스 공급에 있는지, 보일러 자체 고장인지, 점화 플러그를 교체해야 하는지, 혹은 조금 기다리면 알아서 잘 작동할 것인지, 다양한 경우의 수로 머리는 복잡해져옵니다.


행여나 원터치로 고쳐질 일을 괜히 사람을 불러서 헛돈을 날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결국은 자가 수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인건비는 살인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이러한 수리/보수 관련 비용은 정말 황당하게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부품 교체비가 더해지면 그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게 되지요.


자가 수리를 위한 첫번째로, 보일러 제품명을 찾아내 인터넷에서 사용설명서를 다운로드했습니다. 보일러 점화에 문제가 있을 경우 5번정도 연료 주입버튼을 펌핑한 뒤 점화를 시도하라고 적혀 있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시도를 해도 보일러는 묵묵부답.

결국 각종 미국 인터넷 게시판을 뒤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튜브(Youtube) 동영상을 뒤지다 보니 보일러 점화를 위한 동영상들이 나오더군요. 대여섯 개의 동영상을 시청할 즈음, 독특하게 보일러를 수리하는 사람의 동영상을 보게 됩니다.

무려 9000개가 넘는 보일러 수리 관련 유튜브 영상들.

이 영상에서, 그는 연료주입 버튼을 5회가 아닌 30~40회정도로 아주 빠르게 펌핑한 다음 점화스위치를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거다!' 하는 느낌에 바로 실행에 옮기고, 보일러는 바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리가 끝나고 바로 머리속에 든 생각은 '아, 이제 온수 샤워를 할 수 있다!' 가 아니라 '귀찮은 일
(수리공 부르고, 집주인에게 연락) 덜었다!' 였습니다. 적어도 수리비로 150달러(약 17만원) 이상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3시간여의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되었습니다.



2011년 9월, 문이 잠기다

제가 있는 아파트의 문은 호텔처럼 닫으면 자동으로 걸쇠가 튀어나와 잠기는 방식입니다. 하루는 급하게 휴지통을 비우기 위해 공동 쓰레기장에 다녀오는 길에 문이 닫혀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미국에선 문을 따주는 사람을 locksmith라고 하는데, 서울의 아파트촌처럼 집에서 5~10분거리에 열쇠집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기술자가 오는데만 해도 상당한 인건비가 소요됩니다. 운이 좋으면 50달러 이내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많게는 150달러까지도 물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담을 넘어서 들어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와중에, 어린 시절 어머니가 문이 잠기면 식칼로 따던 모습이 생각나, 쓰지 않는 회원카드를 꺼내 열심히 문에 넣고 씨름하길 약 5분, 기적처럼 문이 열렸습니다. 역시나 돈 굳었다, 시간 굳었다 생각에 어깨춤이 덩실덩실.



2011년 10월 낮은 수압의 공포

어느날부터인가, 싱크대 물이 잘 안나오더군요. 냉수와 온수를 제어하는 손잡이 부분의 이상인 듯 하여, 관련 부품을 사다가 교체, 조립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악화. 마치 커피숍에서 주는 커피저을 때 쓰는 납작한 빨대를 통과하는 수준의 가느다란 물줄기만이 보입니다.

연락을 받은 집주인은 수도 수리공을 불렀지만, 작은 손전등을 하나 들고와 파이프를 스윽 훑더니 '파이프가 어디 매설된지 몰라서 못 고친다.' 말 한마디를 남기고 150달러(약 17만원)을 받아갔습니다.


결국 아파트 관리소 측의 자칭 수도 전문가께서 오셔서 이것저것 다 확인 후, 동맥경화처럼 부엌의 수도꼭지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며 이를 통째로 갈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진단하는데 100달러, 그리고 수도꼭지 교체 가격으로 150달러, 총 30만원에 달하는 금액의 견적을 내놨습니다.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집주인으로써는 펄쩍 뛸 일. 결국 진단비만 내고, 수도꼭지는 인터넷에서 주문, 저와 집주인은 물보라를 맞아 가며 고초끝에 조립 성공, 지금은 좋은 수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2년  1월, 열풍기의 고장

미국에서는 바닥난방이 흔치 않아서, 많은 가정용 보일러들은 온수 공급 기능만을 합니다. 따라서 보일러(boiler)보다는 water heater라는 용어가 더 자주 쓰입니다.

그렇다면 난방, 즉 실내 공기는 어떻게 뎁힐까요?

우리가 흔히 '라제타'라고 불리는 둘둘말린 온수 파이프를 이용하거나, furnace라고 불리우는 온풍기를 설치해 씁니다. furnace는 빨아들인 실내 공기를 가스불로 뎁힌 뒤, 집 구석구석에 연결된 통풍구로 공기를 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장치가 제가 설정한 목표 온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더군요. 꺼지고 켜지는 빈도가 반반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하루에 켜지는 시간은 길어야 4시간 남짓, 집안이 완전히 냉골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furnace의 모습. 계기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구조.

집주인은 바로 업체에 전화하여 직원을 불렀지만, 직원은 집구조가 특이해서 furnace로의 진입이 불가능하고, 일단은 공기를 빨아들이는 곳에 연결된 필터가 더러워서 그런 것 같다며 필터 교체+10여분동안의 수다 비용으로 190달러(약 20만원)을 받아갔습니다.

조금 사기당한 기분이었지만, 일단 잘 되는 것 같아 안심하고 사용했는데, 이틀 뒤부터 다시 오작동 시작. 앞서 경험했던 일들을 되살려 각종 인터넷 동영상과 관련 자료를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다리와 테이블을 동원, 4미터 정도 높이를 기어올라가 천장에 있는 난방장치에 접근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처음 보는 기계의 구조이다 보니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 지 감이 안오더군요.

고생끝에 올라가 보았지만 답이 안나오는 상황.

인터넷에서는 furnace자체의 온도가 과열되진 않았는지 판단하는 센서가 오작동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센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접합되어 있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더군요. 결국 집주인과 긴 전화 통화 끝에 다른 기술자를 불러 해당 장치를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차! 싶더군요. 만약 그 기계에 올라가는 방법과, 고장 원인만 정확히 알고 있었어도, 20여만원을 받아간 그 기술자에게 설명만 잘 했다면 바로 고쳤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긴 미국이니까요. 전화로 따져서 다시 불러서 공짜로 고치고, 그런 상황까지 이끌어내기가 참 힘듭니다.



살인적인 인건비와 DIY의 악순환

맥가이버의 명장면. 80년대 초반까지 공감 가능.

한국에서는 출장비로 2~5만원 정도가 소요되거나, 아예 공짜로 고칠 수도 있는 일들을 미국에서는 거액을 들여 고쳐야 합니다. 앞서 설명했던 대로, 인건비도 비싸고, 거주지역과 영업소의 거리가 상당히 먼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게다가 한국에서는 수십 년을 살면서 카센타에서 일하는 친구, 케이블 티비 회사의 설치일을 하는 친구 등, 각종 분야의 인맥을 통해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리 전화로 조언을 듣고 나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거주 경험이 짧다 보니, 이러한 인맥 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국 사람들도 이러한 문제로 수백, 수천 달러를 들이지 않기 위해 직접 부품을 구입해 수리하고, 설치하는 일을 하다 보니, Home Depot처럼, 오로지 집 유지보수를 위한 제품만을 파는 초 대형 마트가 전국적으로 성업하고, 일거리가 줄어드니 자연스레 기술자들의 인건비는 더욱 상승합니다.
 


미국 가정집에는 DIY를 위해 집집마다 매우 전문적인 수준의 공구들-드라이버 세트, 핸드드릴, 소형 발전기 등-을 구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거주'하나만 해도 서부 개척 정신의 땀이 필요한 곳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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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임지겠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o^

    2012/01/17 12:20 [ ADDR : EDIT/ DEL : REPLY ]
  2. 귀차니스트

    문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측면에 걸리는 부분 밑에 보면 자동차의 child safety lock처럼 자동으로 잠가지는 on/off 버튼이 있습니다. 그걸 해제하면 자동잠금이 없어지죠. 그리고 카드로 여셨다니 옛날방식 문인가 봅니다. 요즘은 절대 그런걸로 안열리죠..

    저도 해외생활 15년차인데, 맥가이버란 말 공감합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에도 비슷한 내용을 올렸었구요. 아마도 외국 생활이 길어질수록 모두가 맥가이버가 되는듯 합니다.

    2012/01/17 13:47 [ ADDR : EDIT/ DEL : REPLY ]
    • 댓글 감사합니다. 미국엔 맥가이버가 대략 1억 천만명 정도 사는 것 같아요! ㅋㅋ

      2012/01/17 16:33 [ ADDR : EDIT/ DEL ]
  3. 초초초 공감글입니다
    미국 살아보니 수리기사 부를 일 생기면 정말 OTL
    비싼 돈 들여 불러놔도 정작 제대로 고치는 사람은 또 별로 없어 결국 이중으로 돈 쓰게 되는 경우도 있고 ;;;;;;
    저는 다행히 미국오자마자 이웃아저씨와 친해져서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었지요 ㅎㅎ
    진짜 미국에서 뭔가 고장이 났다거나 하면 인터넷 검색필수!!

    2012/01/17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역시 인맥이 중요합니다.ㅠㅠ 저는 하나하나 고치다보니 제가 다른 이웃들에게 그 '인맥' 역할이 되어주고 있네요.

      2012/01/17 16:32 [ ADDR : EDIT/ DEL ]
  4. 김려완

    저도 소 뒷걸음질치다 한 일이지만 물 안나오는 온수히터 물 나오게 했구요. 김치도 담아요. 한국에 있었으면 김치를 담을일이 있었겠어여 ㅋㅋㅋ 외국나와서 살면 한국에서 안할일들을 어떻게든 하게 되는거 같아요.

    2012/01/17 16:07 [ ADDR : EDIT/ DEL : REPLY ]
    • 대한민국 화이팅입니다! 김치 힘으로 못할게 있겠습니까? ㅋㅋ

      2012/01/17 16:31 [ ADDR : EDIT/ DEL ]
  5. 그래서 미국남편들은 다 맥가비어인가 봐요~
    로우스, 홈디포 이런곳이 한국에 생기면 망하겠지만...ㅋㅋ

    2012/01/17 16:29 [ ADDR : EDIT/ DEL : REPLY ]
    • 예전에 나산홈플레이스라고, 지금 7호선 강남구청역 자리에 나산백화점이 없어지면서 홈디포와 비슷한 컨셉의 백화점이 생긴 적이 있었어요. 성패를 가늠하기도 전에 안전진단에서 불합격을 받아 바로 셔터를 내렸던 아픈 기억이 있네요^^;

      2012/01/17 16:31 [ ADDR : EDIT/ DEL ]
  6. 역시 영어는 항상 사람을 어렵게하는군요. 전기로 정도로 알고 있었떤 Furnace가 이런 뜻이 있었군요.

    2012/01/17 19:16 [ ADDR : EDIT/ DEL : REPLY ]
  7. 아~어쩐지...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집이 공구상이나 차센타도 아니고 창고에 공구도 많고,
    차량도 직접 수리하고, 기술자의 일을 스스로 하는 일이 많아 이상했는데
    글을 읽어보니 이해가 되는군요...

    2012/01/17 21:05 [ ADDR : EDIT/ DEL : REPLY ]
  8. K

    뿌와님 이야기는 어느주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떤주들는 법으로 landlord가 기본적인게 고장나면 자비로 몇일이내로 고쳐줘야 합니다. DIY도 좋지만 그런점도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으면 좋겠지요? ^^

    2012/01/18 13:06 [ ADDR : EDIT/ DEL : REPLY ]
  9. ㅎㅎㅎ 진짜 진짜 공감 백배! 이런상황 맞을때마다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구나라고 자꾸 생각합니다. 근데, 뿌와님 진짜 대단하신듯... 이걸 어떻게 인터넷을 찾아 직접 할 생각을 다 하셨는지...저도 잘 기억해 뒀다 문제 생기면 시도해 봐야 겠네요~ ㅎ 궁금한게... 뿌와님 뉴욕 어디에 사세요? 문제 생기면 도움좀 받게요~ ^^

    2012/01/18 13:31 [ ADDR : EDIT/ DEL : REPLY ]
  10. 완전 공감이에요~!! 전 호주사는데,, 뭐 고장나서 사람부르려면,, 정말 비싸죠,, 당일날 바로 오지도 않고,, 서비스쪽은 정말 한국만큼 잘되있는나라가 없는거 같아요~

    2012/01/18 14:52 [ ADDR : EDIT/ DEL : REPLY ]
  11. 라이얀

    완전 200% 공감하지요. 몇년전에 집 구했더니 이젠 집을 지어볼 수도 있겠단 자신감이 생깁니다. ^^;;; 공구도 다 있겠다... ㅡ.ㅡ;;;;;;;;

    2012/01/19 13:04 [ ADDR : EDIT/ DEL : REPLY ]
  12. 공감, 정말 공감입니다
    여긴 캐나다인데 미국보다 훨씬 시골스런 여기는 더더욱 개척정신이 필요합니다.
    부속이 필요하면 거의 다 미국에다 주문을 하는데 부속이 도착하기까지만 1~2주;;
    정말 한국에서의 빨리빨리 습성을 버리지 않으면 화병나서 속이 타버릴겁니다

    2012/01/20 01:27 [ ADDR : EDIT/ DEL : REPLY ]
  13. 박 줄 어 는가 박이 나돌 음티토 초대장 상시배포

    2012/02/22 09:15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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